트릭 미러

💬 자신의 위치에서 (엄청난 재능으로) 시스템을 뜯어보되, 발 딛은 곳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 그리고 때때로는 그 노력의 한계까지 인정하는 미덕(이것 또한 재능).


🔖 하지만 인터넷은 모든 일에 “나”를 적용한다. 인터넷은 누군가를 지지하면 자동으로 그들의 경험을 나도 공유하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연대는 정치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이고 그것은 일상생활에서의 나를 솔직하게 드러냈을 때 최대한 성취된다. 경찰의 탄압에 맞서는 흑인의 투쟁과 신중하게 고른 스타일리시한 옷을 입어야만 무시당하지 않는 과체중 여성의 행보를 지지하고 싶은가? 인터넷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방식으로 이들과 연대를 표시하는 대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면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연대를 표현하라고 권한다.

🔖 그날은 아마도 자기기만의 시작이었거나 종말이었을 것이다. 그 후에도 나는 여전히 동화 속 소녀들에게 나를 투영했지만 무언가 확실히 달라졌다. 내가 지금까지도 그들을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제는 희미한 추억이 되어버린 진정 순수했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던 대로 나라는 사람을 경험할 수 있었던 시절,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천국 같은 여름 방학에 이글이글 타오르는 텍사스 햇살이 네모난 그림을 그리는 방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책을 읽던 시절 그리고 이미 복잡한 여성 캐릭터가 된 청소년기에도 “복잡한 여성 캐릭터”라는 표현 같은 건 듣지 못했던 그날들이 진심으로 그리워서일지도 모른다. 동화 속 소녀들은 모두가 씩씩하고, 어른 여주인공들은 모두 억울해한다. 그래서 나는 어린 시절 이후에 명확해져버린 어떤 사실이 싫다. 이 이야기들이 보여주는 것과 배제하는 것, 여성들의 용감함과 아픔이 문학에 너무 집중적으로 표현된 것이 싫다. 실제 세상은 여성이 이 모든 감정을 경험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 어른이 되면서부터 소설 속 여주인공의 세계에서 나를 찾기가 머뭇거려진 이유는 이 관계가 상호적이지 않으리라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안에서 조 마치를 보지만 이 세계의 조 마치들은 내 안에서 그들을 볼 수 있다고 기대하지도 않고 보지도 못한다. 가끔 백인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수다를 떨다가 만약 자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는다면 어떤 배우로 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가 있다. 백인 친구들은 마치 마트의 한 복도를 전부 차지한 진열대에서 시리얼을 고르듯이 비슷비슷한 연예인들을 데리고 온다. 다채롭고 미묘하게 다른 팬톤의 색감처럼 금발, 갈색 머리, 빨강 머리 친구들은 자기와 닮은 캐릭터들을 다양한 선택지에서 고른다?장애 유무나 체형으로까지 고를 수는 없다?반면 나에게는, 대략 5년 전에 나왔던 영화에서 아시아계 조연 역할을 번갈아서 했던 세 명의 여배우 외에는 선택권이 없다. 물론 요즘 출간되는 현대 소설에 나처럼 생긴 여성들도 등장하긴 한다. 지하철이나 저녁 파티에 꽂아놓는 장식품처럼 나오거나 그 주인공 남녀의 백인성에서는 찾을 수 없는 성실함으로 무장한 캐릭터로 나오기도 한다. 여성이 인간의 조건을 대표하는 어떤 상징으로 보이도록 허락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는 여성의 조건을 대표하는 상징도 아니었다. 더 최악은 문학 속에서 여성이 처한 조건?백인이자 억압당하는 조건?은 너무나도 불만족스러웠다는 점이다. 나는 내가 들어가고 싶지도 않은 영역에서 차단당했다. 여주인공의 텍스트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여성들이 최대한 잘해봐야, 그러니까 구조적 억압을 최소한으로 받는다 해도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인생에 의해 파괴된다는 점이다.

🔖 페미니스트들은 모범적인 여성상에 대한 전통적인 남성적 정의, 즉 여성은 상냥하고 얌전하고 고분고분하며 평범한 인간으로서 갖는 결점이 없어야 한다는 개념을 해체하고 거부해왔다. 그러나 남성이 여성을 높은 자리에 올려놓고 그들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즐거워했다면, 페미니즘은 이제까지 그 작동 순서를 뒤집는 데 성공해왔다. 넘어진 여성을 일으켜 세워서 다시 아이돌화하는 것이다. 여성 유명인들은 계속해서 최대한 매력적이어야 한다는 개념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지만 이제 그 매력은 “어려운” 자질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페미니스트들은 여전히 아이돌을 찾고 있다. 우리의 복잡한 조건과 용어 안에서 우상화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다.